[사진] 김현희는 누구인가

바레인 수사관이 성경험 계속 묻자
김현희, 주먹 날린후 권총자살 시도
지난 1987년 발생한 대한항공(KAL)기 폭파 사건 범인인 북한공작원 김현희<사진>는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된 직후 두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제임스 릴리 전(前) 주한미국 대사가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밝혔다.
폭파 사건 직후인 12월 1일 바레인 공항에서 위조 여권을 쓰다 체포된 김씨가 청산가리를 묻힌 담배를 씹어 1차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당시 동료인 남성 공작원은 이 방법으로 현장에서 자살했다. 그러나 김씨의 경우 이안 헨더슨 바레인 경찰서장이 담배를 날쌔게 빼내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다. 릴리 전 대사는 회고록에서 헨더슨은 지금도 당시 상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청산가리가 묻은 담배를 빼낼 때 물린 손가락 상처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바레인 수사관이 ‘성적 경험’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하자, 갑자기 옆의 여성 통역자를 발로 차서 쓰러뜨리고 망치 같은 주먹으로 헨더슨을 한방 먹이면서 그의 권총을 움켜잡고 다시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릴리 전 대사는 김씨가 전기충격기를 맞고서야 넘어졌다고 썼다.
릴리 전 대사에 따르면 질려버린 헨더슨이 우리 외교관들에게 “이 여자를 데려가시오. 한국인들이 알아서 해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씨의 기습 공격이 오히려 우리 정부가 김씨를 데려오는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릴리 전 대사는 “처음에 젊은 여자(김현희)는 일본에서 자란 중국인 고아로 비행기 폭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다”며 “(김씨의 말이) 곧 거짓말이라는 게 행동으로 드러났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KAL858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직후, 일본 국적의 북한 테러리스트 김현희(마유미)라는 여인이 대선 하루를 앞두고 서울로 압송되어 왔다.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입에는 재갈을 물린 채 비행기에서 내린 김현희는 곧이어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을 본 뒤 많은 것을 느꼈다’며 ‘사죄하기 위해 진실을 밝힌다’고 침통한 표정으로 사건 내역을 밝혔다.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지금은 전 안기부 직원과 결혼하여 신분을 바꾼 채 살고 있는 김현희. 그러나 그녀는 북한에서 치밀하게 교육받은 테러리스트치고는 너무나도 헛점이 많았다.

안기부가 증거물로 제출한 사진 속 화동은 과연 김현희인가?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가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임을 입증하는 사진 3장을 발표했다. 하나는 72년 11월 평양을 방문한 남북조절위 남측대표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평양의 화동 사진, 두 번재는 일본 하기와라 기자가 72년 평양주재 당시 찍은 사진속의 화동, 세 번째는 평양에서 꽃다발 증정대기 중인 화동 사진이다.
세 장의 사진은 오로지 김현희의 진술에 의해 ‘김현희’임이 확인되었다.

3장의 사진은 모두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우선 첫 번째 사진에 나온 화동의 귀는 동그란 모양의 귀인데 비해 김현희의 귀는 세모꼴 모양, 속칭 칼귀이다. 그런데 성형외과 전문의들의 견해에 다르면 사람의 귀는 지문과 같아서 레슬링과 같은 과격한 운동 또는 성형에 의하지 않고서는 결코 변하지 않는 신체부위라고 한다. 결국 안기부가 제시한 첫 번째 사진이 김현희라는 사실은 전문적인 견해에 의해 인정되기 어렵다.
두 번재 공개된 사진은 일본 하기와라 기자가 사진 속의 화동이 김현희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데 이어 김현희 역시 자신임을 자백한 것이다. 그러나 사진 공개 이후 북한의 정희선이라는 여인이 사진 속의 화동이 자신임을 주장, 이에 하기와라 기자 역시 김현희라는 주장을 철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안기부는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세 번째 사진은 결정적이다. 세 번째 사진은 이미 72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에 소개된 사진으로 당시 동아일보는 이 사진에 대해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조절위원회’사진이 아니라 ‘개성에서 개최된 적십자회담’사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앙골라에는 김현희의 아버지가 없었다.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의 아버지인 김원석은 앙골라 주재 북한외교관이라고 밝혔다.

안기부 발표 직후 일본 아사히 신문이 앙골라를 겸해서 관장하고 있는 짐바브웨 주재 일본 대사관을 통해 전화로 확인한 결과, 앙골라 주재 외교관 리스트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보도했다.
또한 안기부 역시 문예춘춘 1988년 3월호에서 현재 확인 중에 있다는 입장만을 발표한 채 지금껏 명확한 결과를 내놓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김현희의 파트너 김승일은 70세의 죽음을 눈 앞에 둔 노인에 불과했다.

안기부는 당시 음독자살했다는 김승일을 김현희와 같은 2인 1조 테러팀이라고 지목하면서 김승일에 대해 영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한 전자기술 전문의 정예공작원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김승일이 음독자살을 한 이후 사체부검을 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김승일은 위의 거의 대부분이 수술로 절제된 70세 중환자 노인이었다. 또한 일본 기자들이 추적한 바에 의하면 김승일은 4개 국어는커녕 영어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김현희는 음독한 사실이 없었다.

안기부 발표에 다르면 김현희 일행은 사고 발생 2일 후인 87년 12월 1일 바레인 공항을 탈출하려다 검문을 받자 음독, 김승일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김현희는 치사량 미달로 살아남았다.

당시 김현희의 응급처치를 담당한 바레인의 야로시아 응급부장에 따르면 김현희는 음독한 바가 없다고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했다.

이동한 곳마다 증거를?남겨놓은 헛점투성이 테러리스트, 김현희

당시 발표에 다르면 김현희는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댔으며 바레인에 묵었던 호텔방에는 무려 400여 점이나 되는 소지품을 남겼다.

정예공작원이라면 자신의 흔적을 철저히 감추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김현희는 온 유럽을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댔다. 더욱 의심스러운 점은 바레인에서 묵은 호텔에 무려 400여점이나 되는 소지품을 남겼다는 것이다.

▲표지판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찍은 것처럼 보인다. '정예공작원'이 거사를 앞두고 증거물을 뿌리고 다녔다.


김현희의 수기는 당시 안기부 발표와 무려 80여군데나 다르다.

사건 당시 김현희의 진술에 따른 발표에 의하면 공산권에서 오스트리아로 입국하는 가운데 빈의 남역에 도착, 암파크링 호텔 603호에 투숙했다고 되어 있다.

91년에 발간된 김현희의 수기는 이와 다르다. 사건 직후 일본에서는 김현희의 행적을 수년간 추적한 결과 오스트리아 입국시 빈의 ‘남역’이 아니라 ‘서역’임을 밝혔으며 당시 투숙한 방은 603호가 아니라 302호로 밝혀냈다.
김현희는 이와 달리 수기에서 일본측의 추적 내용대로 인정함으로서 자동적으로 자신의 진술 및 안기부 발표를 부인했다. 이렇듯 수기에서 처음 진술과 엇갈리는 곳은 무려 80여곳에 이른다.

by tkfkd4858 | 2005/07/01 17:43 | ╂ 이슈 & 뉴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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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름다워 at 2016/10/25 16:24
김현희는 북한서 당시로서는 미인축에 속한얼굴이라 1980년대에 5과로 뽑혀 초대소에서 공작원교육을 받았다는것이 극우보수논객인 조갑제가 운영하는 조갑제닷컴에서도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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